[영화] 타인의 삶 (2006), 독일, 별 네 개 반

아, 너무 좋았다. 별 반 개는 일견 너무 완벽해보이는 시인 드라이만이 깎아먹었다. 웃지도 않고, 말도 없고, 무뚝뚝하지만 그래도 변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비밀경찰 비즐러 아저씨 만세! 아, 비즐러 아저씨 너무 좋아요. ㅠㅠ
영화 줄거리를 자세히 쓰고 싶지도 않다. 그냥 무조건 보세요.
자신에게 헌정된 '착한 사람들을 위한 소나타' (아, 제목 너무 멋지잖아.) 를 한 권 집어들고, 처음으로 슬며시 웃으면서, 이건 날 위한 거요. 하고 말하는 아저씨. 걸어가는 뒤로 보이는 담벼락 가득한 낙서가 보여주는 사회의 변화. 회색빛 동독의 공기가 약간 우울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따뜻해지는 느낌 때문에 그다지 보기 어렵지도 않다.
마음에 들었던 장면 몇 개.
공산당 서기(?)가 민주주의자인 극작가 드라이만의 아내인 아름다운 여배우 크리스타를 짝사랑해서 목요일마다 그녀를 불러낸다. 드라이만의 연극을 금지시키겠다고 협박하는, 거절할 수 없는 강압에 못 이겨 그녀는 몇 차례 드라이만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그를 만나지만, 드라이만을 도청하면서 감시하던 비즐러가 초인종을 조작해 드라이만에게 현장을 목격하게 만들어 주고, 마침내 드라이만이 그녀에게 말한다. 자기를 위해 그러는 줄은 알지만, 가지 말라고. 비즐러가 그 대화에 깊이 몰두해 도청하던 중 부하가 도청을 교대하러 찾아오고, 아쉽지만(!) 비즐러는 그 곳을 나와 술집에 들른다. 그런데, 크리스타가 서기관을 만나러 나오던 중 그 술집에 잠시 들르게 되고, 비즐러가 그녀에게 팬인 척하면서 자신을 포기하지 말라고 짐짓 말한다. 크리스타가 먼저 술집에서 나가고, 다음 날 다시 부하와 도청을 교대하러 왔더니, 웃기게도 부하가 완전 로맨스 소설을 써 두었다. ㅋ 비즐러가 나가고 잠시 뒤, 크리스타가 그 집에서 나갔다가 20분만에 돌아와 무척이나 기뻐하는 드라이만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내용. 그 보고서를 읽고, 웃는 것도 아니고 안 웃는 것도 아닌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보고서를 잘 썼다고 부하를 칭찬하는 비즐러. 그 말을 듣고 또 기뻐하는 귀여운 뚱뚱보 부하. ㅋ
또 하나는, 비즐러가 집에 올라가는 길에 엘리베이터에서 농구공을 든 꼬마와 마주친다. 꼬마가 비즐러에게, 아저씨 진짜 보안국 사람이냐고, 보안국은 나쁘다고 말한다. 비즐러가 왜? 하고 묻자 꼬마는 자기 아빠를 잡아갔다고 말한다. '이름이 뭐냐?' 고 묻는 비즐러. 이름을 묻는 것은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 보안국 사람들은 심문할 때 상대방의 이름을 묻는다. 혹은, 밥 먹을 때 우연히 옆 사람이 당서기관을 풍자하는 농담을 하는 것을 듣게 되면, 또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꼬마가 대답하는데, 무슨 이름이요? (내 이름이요? 아빠 이름이요? 하는 뜻으로) 하자 비즐러는 잠시 꼬마를 쳐다보고는, 니가 들고 있는 공 이름 말이다, 하고 대답한다. 공에 이름 붙이는 사람이 어딨냐고 하는 꼬마를 남겨두고 비즐러는 엘리베이터를 내려 집으로 간다.

자극적이지 않고, 따뜻하고, 뻔하지 않은 결말에, 말이 많지도 않은 영화.
좋다.
다만 너무 작위적인 극작가 드라이만의 캐릭터에 별 마이너스 반 개. 물론 비즐러를 감화시키려면 그 정도 인간미는 넘치는 캐릭터여야 했을테지만, 보기 거북한 건 좀 사실. ㅎ

by 나뭇잎 | 2008/02/02 15:49 | 세상의 모든 것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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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2/04 11:4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나뭇잎 at 2008/02/04 13:12
응. 오랜만에 괜찮았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받은 거라고도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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